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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For Makers

번역 일지
  • 05-03-11 손실 부분 복구
  • 04-02-07 번역 완료
  • 04-02-03 좋은 설계는 암시적이다 / 약간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 힘들다.
  • 04-02-02 좋은 설계는 단순하다 / 시간을 뛰어넘는다 / 제대로 된 문제를 해결한다.
  • 04-01-31 번역 시작



Taste for Makers

창조자들을 위한 취향


Copyright © 2002 Paul Graham

"...코페르니쿠스가 이퀀트(equant)에 대해 미적인 관점에서 반대한 것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거부하는 핵심적인 동기가 되었다..."

- 토마스 쿤(Thomas Kuhn), 코페르니쿠스 혁명

역자 주: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이 지구 주위를 원운동 하는데, 그 원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이퀀트라는 것이 있어서 행성이 거기에 가까워지면 속도가 빨라지고 거기에서 멀어지면 속도가 느려진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켈리 존슨(Kelly Johnson)에 의해 훈련되었고, 아름다워 보이는 비행기가 그에 걸맞게 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을 열렬하게 신봉했다."

- 벤 리치(Ben Rich), 스컹크 웍스(Skunk Works)

역자 주: 켈리 존슨은 미국의 전투기 제작사인 록히드(Lockheed)의 비밀 개발팀인 스컹크 웍스의 처음 책임자이다.


"아름다움은 첫 번째 검사 기준이다. 이 세상에서 추한 수학이 영구히 있을 자리는 없다."

- G. H. 하디(G. H. Hardy), 어느 수학자의 변명(A Mathematician's Apology)


최근에 나는 MIT에서 가르치고 있는 한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그의 분야는 요즘 인기 절정이어서 그는 매년 대학원 지망생들의 입학 지원서의 홍수 속에서 산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 그가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특별한 취향이 있는지 어떤지는 통 모르겠어."

취향이라. 요즘에는 이 단어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밑바탕에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내 친구의 말은 자기 학생들이 훌륭한 기술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술적 지식을 써서 아름다운 것들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수학자들은 훌륭한 연구 결과를 "아름답다"고 부르며, 과학자, 공학자, 음악가, 건축가, 디자이너, 작가, 화가 들도 예나 지금이나 그래왔다. 이들이 똑같은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그들이 뜻하는 바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인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한 분야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발견한 것을 다른 분야에도 도움이 되게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떤 것들을 설계하는 우리에게 이것은 단지 이론적인 질문만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좋은 것들을 만들기 위해 좋은 취향이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공허한 추상으로 취급하는 대신, 그것에 대해 열심히 떠들기 위해, 또 공허한 추상에 대한 느낌에만 의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질문으로 고쳐 생각해 보자. "좋은 작품을 어떻게 만드는가?"

* * *

오늘날 취향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많은 사람들은 "취향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믿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좋아할 때, 그들은 왜 그런지 모른다.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머니가 그것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잡지에서 어느 영화배우가 그것을 갖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것이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의 생각은 아직 정체를 모르는 충동들로 뒤얽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어릴 때 이렇게 뒤얽힌 것들의 정체에 대해 덮어 두도록 교육받았다. 동생이 색칠하기 책에 사람들을 녹색으로 칠하는 것을 놀리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을 하시곤 한다. "너는 네 방식대로 하기를 좋아하고, 동생은 동생 방식대로 하기를 좋아하는 거야."

이 점에서 어머니는 미학의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지 못하고, 단지 둘이서 다투는 것을 그만두게 할 뿐이다.

어른들이 말해 주는 여러 가지 반쪽짜리 진리들처럼, 이것도 그들이 말하는 다른 것들과 모순된다. 취향이란 개인적 선호의 문제일 뿐이라고 귀가 아프게 이야기한 뒤에 아이를 박물관에 데리고 가서는 레오나르도가 위대한 예술가이므로 주의를 기울여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아이의 머리에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그 아이는 "위대한 예술가"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모든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하기를 좋아할 뿐이라고 여러 해 동안 들어왔다면, 그 아이는 위대한 예술가가 그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곧바로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그 아이의 프톨레마이오스적인 우주관에서 위대한 예술가란, (맛도 없는) 브로콜리처럼, 누군가 어느 책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어른들이 좋아하는 것일 뿐이며, 이것이 더 그럴 듯한 이론으로 보일 것이다.

* * *

취향은 단지 개인적 선호라고 말하는 것은 논쟁을 막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어떤 것들을 설계하기 시작하면서 이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당연히 더 잘 하기를 원한다. 축구 선수들은 경기에서 이기고 싶어 한다. 최고경영자들은 소득을 증대시키고 싶어 한다. 자기 일을 더 잘 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며 진정한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설계 일을 하면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일을 더 잘 하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취향이 단지 개인적 선호라면, 모든 사람들은 이미 완벽한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뿐이다.

어느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설계 일을 계속 하면 그 일을 점점 더 잘 하게 될 것이고, 취향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일을 잘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신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의 취향은 단순히 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 틀린 것이다. 취향은 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공리(axiom)는 싹 사라진다.

지금은 상대주의가 유행하고 있어서 자기 취향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취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방해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벽장에서 나와서, 최소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좋은 설계와 나쁜 설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이제부터라도 좋은 설계에 대해 상세하게 공부할 수 있다. 취향이 어떻게 변해 왔는가? 실수를 했을 때는 무엇 때문에 그랬는가? 다른 사람들은 설계에 대해 무엇을 배워 왔는가?

이 질문들을 잘 살펴보기 시작한다면, 서로 다른 분야들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공통점이 많은가에 대해 놀랄 것이다. 좋은 설계에 대한 동일한 원리들이 계속 반복해서 나타난다.


1. 좋은 설계는 단순하다.

이 말은 수학에서 미술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다. 수학에서 이 말은 짧은 증명이 더 좋은 증명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공리(axiom)들에 대해서는 짧은 것이 더 좋은 것이다. 프로그래밍에서도 그 의미는 똑같다. 건축가나 디자이너에게 이 말은 주의 깊게 선택한 구조적 요소들 몇 개에 의해 아름다움이 좌우되는 것이지, 천박한 장식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장식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무미건조한 형태를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쁘다.) 마찬가지로 회화에서도 몇 개의 물체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견실하게 형상화한 정물화(still life)가, 번지르르하기는 하지만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그려 놓은 이를테면 레이스 옷깃의 그림보다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글쓰기에서는 이런 의미이다. "자기의 뜻을 말하라. 그리고 짧게 말하라."

단순함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단순함은 의무 태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장식은 물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창조적이 되려고 할 때는 어떤 특이한 기분에 휩싸이는 것 같다. 초보 작가는 평소에 말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과장된 말씨를 고른다. 예술적으로 보이려고 하는 디자이너들은 날렵한 곡선(swoosh)과 소용돌이 모양(curlicue)에 의지한다. 화가들은 스스로 표현주의자(expressionist)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모두 둘러대는 말이다. 장황한 단어들이나 "표현주의적인" 붓놀림 밑에는 별로 신통한 것이 없다. 놀라운 일이다.

단순해져야 할 때에야 진정한 문제와 마주 서게 될 것이다. 장식을 내놓을 수 없을 때에야 본질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좋은 설계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수학에서 모든 증명은 실수가 있지 않는 한 시간을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어느 수학자의 변명"을 쓴) 하디가 추한 수학이 영구히 있을 자리는 없다고 한 말은 무슨 뜻일까? 그는 (스컹크 웍스의 처음 책임자) 켈리 존슨과 같은 뜻일 것이다. 어떤 것이 추하다면, 그것은 최선의 해답이 될 수 없다. 더 좋은 해답이 있을 것이고 결국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시간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최선의 답을 찾아내는 길이다. 자신보다 탁월한 어떤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면 즉시 그렇게 하라. 많은 위대한 대가들은 이것을 잘 했기 때문에 자기 뒤를 쫓아오는 사람들을 걱정할 틈이 없었다. 뒤러(Albrecht Dürer) 이후의 모든 판화가(engraver)들은 그의 그림자 밑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역자 주: 뒤러는 르네상스 시대 독일의 화가, 판화가, 미술이론가이다. 뒤러의 동판화 작품 감상... [http]http://www.ibiblio.org/wm/paint/auth/durer/engravings/

시간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또한 유행(fashion)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유행은 정의 그대로 시간에 따라 변한다. 따라서 먼 미래에도 여전히 좋아 보일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으려면, 그 매력의 바탕은 가치(merit)에는 더욱 더, 유행에는 더욱 덜 둬야 한다.

정말 이상하지만, 미래의 세대에 매력적으로 보일 무엇을 만들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과거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노력하는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은 분명히 현재의 유행에 상관없이 과거와 비슷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면서 1500년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2500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3. 좋은 설계는 제대로 된 문제를 해결한다.

일반적인 (미국식) 가스레인지는 네 개의 버너가 네모꼴로 배치되어 있고 각각 다이얼이 하나씩 달려 있다. 그 다이얼들을 어떻게 배치하겠는가? 가장 단순한 답은 한 줄로 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 짚은 질문에 대한 단순한 답이다. 다이얼들은 인간이 사용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한 줄로 놓으면 이 불운한 인간은 잠시 멈춰서 어느 다이얼이 어느 버너에 맞는 것인지 매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이얼을 버너와 같이 네모꼴로 배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안 좋은 설계들은 대부분 열심히는 했지만 길을 잘못 잡은 것들이다. 20세기 중반에 문서의 글꼴을 산세리프(sans-serif)체로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 글꼴은 순수하고 근원적인 글자 모양에 더 가깝다. 하지만 문서에서는 그것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가독성을 위해서는 글자들이 서로 쉽게 구분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타임스로만(Times Roman)체의 소문자 g는 소문자 y와 쉽게 구분된다.

문제들은 해답들과 마찬가지로 개선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에서 다루기 힘든 문제는 일반적으로 해결하기 쉬운 다른 동등한 문제로 대체될 수 있다. 물리학은 다루는 문제가 현상과 성서를 조화시키는 것에서 관찰 가능한 현상을 예측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더 빨리 진보하게 되었다.

4. 좋은 설계는 암시적이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은 묘사가 거의 없다. 모든 것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직접 말하는 대신 독자가 그 장면을 스스로 그려볼 수 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이와 마찬가지로, 암시하는 그림은 설명하는 그림보다 일반적으로 더 마음을 끈다. 사람들은 모나리자(Mona Lisa)에 대해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역자 주: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등을 쓴 영국의 소설가.

건축과 디자인에서 이 원리는 건물이나 물체를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좋은 건물이라면, 사람들이 건축가가 만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고자 하더라도 그 건물이 적당한 배경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에서 이것은 사용자들에게 몇 가지 기본 요소들만 제공하여 그들이 바라는 대로 조합해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고(Lego)처럼 말이다. 수학에서 이것은 여러 가지 새로운 연구의 기반이 되는 증명이, 어려우면서도 장래의 발견으로 이어지지 않는 증명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과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용 회수가 대략적인 가치 척도로 간주된다.

5. 좋은 설계는 약간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항상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뒤러의 [http]동판화, 사리넨(Saarinen)의 [http]자궁 의자(womb chair), 로마의 [http]판테온(Pantheon) 신전, 최초의 [http]포르쉐 911 등은 모두 내게는 약간 우스워 보인다. 괴델(Gödel)의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도 장난처럼 보인다. 역자 주: 사리넨은 핀란드 태생의 건축가로서 존 F. 케네디 공항의 TWA 터미널 등을 설계했다. 괴델은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의 수학자이다. 그의 불완전성 정리는 어떤 크레타 사람이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다."라고 했을 때 그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따질 수 없다는 '크레타 사람의 역설'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유머가 힘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은 힘이 있다는 것이다. 유머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운을 떨쳐버리는 것이며, 유머 감각을 잃는다는 것은 불운에 상처 입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힘은 너무 심각해지지 않는 것에서 볼 수 있거나, 적어도 그런 특질이 있다. 자신감 있는 사람들은 모든 절차를 약간은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히치콕(Hitchcock)은 자기 영화에서, 브뤼겔(Pieter Bruegel)은 자기 그림에서 그랬다. 이 점에서는 셰익스피어도 한 몫 한다. 역자 주: 브뤼겔은 16세기 플랑드르 태생의 화가이다. 그의 유머 감각을 볼 수 있는 그림들... [http]http://cgfa.sunsite.dk/bruegel1/brue1-25.jpg, [http]http://cgfa.sunsite.dk/bruegel1/brue1-12.jpg

좋은 설계가 우스워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유머가 없다는 평을 받는 것이 동시에 좋은 설계라는 평을 받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6. 좋은 설계는 힘들다.

위대한 작품을 만든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의 공통점 한 가지는 매우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허비될 가능성이 많다.

어려운 문제들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수학에서 어려운 증명들은 정교한 해법이 필요하며, 이것은 또한 흥미롭기도 하다. 공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것들은 모두 배낭에서 꺼내 버려야 한다. 까다로운 지형에, 혹은 적은 예산으로 건물을 지어야 하는 건축가는 세련된 설계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사안 앞에서 유행이나 화려함은 옆으로 제쳐놓게 된다.

모든 종류의 노고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고통이 있고 안 좋은 고통이 있다. 열심히 달릴 때 느끼는 그런 고통을 원하는 것이지, 못을 밟았을 때 느끼는 그런 고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문제는 설계자에게는 좋은 것이 될 수 있지만, 변덕스러운 고객이나 믿지 못할 재료들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예술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높이 평가 받는 작품들은 사람을 그린 그림들이다. 이 전통에는 뭔가 중요한 것이 있다. 이것은 얼굴을 그린 그림들이 다른 그림과 달리 우리 뇌의 어떤 부분을 특별히 자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얼굴을 잘 알아보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는 사람들은 우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그릴 수밖에 없다. 나무를 그릴 때 나뭇가지를 5도 정도 돌려놓아도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눈을 5도 정도 돌려놓는다면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바우하우스(Bauhaus)의 디자이너들이 설리번(Sullivan)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채택했을 때 그들이 뜻하는 바는 형태는 기능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힘든 기능을 만든다면 형태도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잘못 사용하는 것에 대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야생 동물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역자 주: 바우하우스는 건축가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1919년 독일에 세운 종합 조형 학교이다. 설리번은 1890년대 미국의 건축가로서 시카고 등지의 여러 고층건물들을 설계했다.

7. 좋은 설계는 쉬워 보인다.

훌륭한 운동선수들처럼,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하는 일을 보면 쉬워 보인다. 대개 이것은 착각이다. 좋은 글의 쉽고 대화한 것처럼 보이는 말씨는 여덟 번은 고쳐 써야 나온다.

과학과 공학에서 어떤 뛰어난 발견은 너무 단순해서 "나도 생각할 수 있었겠다." 하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이제 이 발견이 답변할 차례이다. "그렇다면 왜 안 했는가?"

레오나르도(Leonardo)의 어떤 두상(head) 그림들은 선 몇 개가 전부이다. 이것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선을 여덟 개에서 열 개 정도 제 자리에 그리기만 하면, 이런 아름다운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을 거야.' 글쎄,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정확히 제 자리에 그려야 한다. 아주 조금만 실수해도 전체를 망쳐버리게 될 것이다.

선 그림(line drawing)은 사실 가장 어려운 시각 매체이다. 완벽에 가까운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수학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폐쇄형 해(closed-form solution)이다. 같은 문제를 연속 근사(successive approximation)로 해결할 예술가는 사실상 전혀 없을 것이다. 역자 주: 폐쇄형 해란 수치적 방법이나 시행착오가 아니라 방정식을 직접 풀어서 얻은 해를 말한다. 아이들이 열 살쯤에 그리기를 그만두는 한 가지 이유는 어른들처럼 그려 보겠다고 마음먹고 처음 그려 보는 것이 선 그림으로 얼굴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쩝!

대부분의 분야에서 쉬워 보이는 것은 연습에서 나오는 것 같다. 아마도 연습이란 전에는 의식적인 생각이 필요하던 일들을 무의식적으로 다루도록 훈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떤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자신의 몸을 훈련시킨다. 어떤 전문 피아니스트는 뇌에서 손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보다 더 빨리 곡을 연주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는 잠깐 있으면 눈을 통해 흘러온 시각적인 인식이 발로 박자를 맞추는 것처럼 자동으로 손을 통해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경지"에 이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그것이 (무조건반사의 중추가 되는) 척수(spinal cord)를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척수는 거의 머뭇거림이 없으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의식적인 생각을 해방시킨다.

8. 좋은 설계는 대칭을 사용한다.

나는 대칭이 단순함을 이루는 바로 그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 자체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자연은 대칭을 많이 사용하며, 이것은 좋은 징조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대칭, 즉 반복과 재귀(recursion)가 있다. 재귀란 나뭇잎의 잎맥 무늬처럼 하위 요소들이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대칭이 어떤 분야에서는 이제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다. 예전에 과다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건축가들은 의식적으로 비대칭적으로 짓기 시작했고, 1920년대에 비대칭은 근대주의 건축의 명백한 전제였다. 하지만 이 건물들도 비대칭의 경향은 중심축에만 있을 뿐, 수백 군데의 작은 부분들은 대칭적이었다.

글쓰기에서도, 문장 속의 구절들에서 소설의 줄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대칭을 볼 수 있다. 같은 것을 음악과 미술에서도 볼 수 있다. 모자이크들은 (그리고 세잔(Cézanne)의 몇몇 작품들도) 그림 전체를 똑같은 원자들로 만듦으로써 더욱 시각적인 활기(visual punch)를 띤다. 구도적 대칭에 의해 기억에 확실히 남는 몇 가지 그림이 나왔다. [http]아담의 창조[http]미국식 고딕(American Gothic)처럼 양쪽이 서로에게 반응할 때 특히 그렇다. 역자 주: '아담의 창조'는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시스티나(Sistine) 성당의 천정에 그린 그림. '미국식 고딕'은 1930년대 미국의 화가 그랜트 우드(Grant Wood)의 그림.

수학과 공학에서 특히 재귀는 큰 성공을 거뒀다. 귀납적 증명들은 멋지게도 간단하다. 소프트웨어에서 재귀로 풀릴 수 있는 문제는 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거의 항상 가장 좋다. 에펠탑이 인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탑 위에 탑이 올라가 있는 재귀적 구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칭, 특히 반복은 생각이 필요한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위험성이 있다.

9. 좋은 설계는 자연을 닮는다.

자연을 닮는다는 것이 본래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은 오랜 세월 문제와 씨름해 왔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나의 해답이 자연의 해답과 닮았다면 이것은 좋은 징조이다.

모방은 부정행위가 아니다. 소설이 삶을 닮아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물을 그리는 것(working from life)은 그림에서도 가치 있는 수단이다. 그런데 그 역할이 종종 오해되곤 했다. 그 목표는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실물을 그리는 것의 요점은 그것이 생각 속에 곱씹어볼 거리를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눈이 무엇을 보고 있을 때 손은 더 흥미로운 일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은 공학에서도 통한다. 배(boat)는 오랫동안 동물의 흉곽처럼 등뼈와 갈비뼈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더 좋은 기술을 위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초기의 비행기 설계자들은 비행기를 새처럼 보이게 설계하려는 실수를 했다. 충분히 가벼운 재료나 동력원이 없었고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엔진은 69킬로그램 무게에 출력은 고작 12마력이었다.) 새처럼 나는 기계를 제어할 만한 정교한 체계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처럼 나는 소형 무인 정찰 비행기는 50년 후에는 볼 수 있으리라고 상상해 본다.

이제는 컴퓨터의 능력이 충분해져서 우리는 자연의 결과는 물론 방법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 유전자 알고리듬(genetic algorithm)을 통해 보통의 감각으로 설계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것들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10. 좋은 설계는 재설계이다.

원하는 일이 처음에 바로 되는 것은 드물다. 전문가들은 초기 작업 일부는 버리게 될 것을 예상한다. 그들은 계획이 바뀔 것도 대비하여 계획한다.

했던 작업을 버리는 것은 자신감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결과를 얻게 될 방법이 또 있을 거야.' 예를 들어, 사람들이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는 종종 잘못된 부분을 다시 그리는 것을 주저한다. 그들은 그 정도까지 한 것도 운이 좋았던 것이며, 무엇을 다시 하려고 하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그들은 그 그림이 정말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스스로 만족한다. 사실은, 그 그림을 다시 안 보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위험 지대이다. 차라리 불만족을 북돋워야 한다. 레오나르도의 그림들에는 종종 선을 제대로 긋기 위해 대여섯 번 시도한 흔적이 있다. 포르쉐 911의 독특한 뒷모습은 어색한 시제품을 재설계하여 나올 수 있었다.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을 라이트(Wright)가 처음 설계할 때 오른쪽 절반은 지구라트(Ziggurat) 모양이었다. 그는 그것을 현재의 형태로 뒤집었다.

실수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실패로 취급하는 대신, 쉽게 인정하고 쉽게 고칠 수 있게 하라. 레오나르도는 스케치를 발명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로써 그림은 탐색이라는 의미에 큰 무게를 두게 되었다. 공개 소프트웨어는 버그의 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버그가 더 적은 것이다.

고치기 쉬운 매체를 갖는 것도 도움이 된다. 15세기에 유화가 템페라(tempera)를 대체한 덕분에 화가들은 인체와 같은 어려운 주제들을 다루기 쉬워졌다. 템페라와 달리 유화는 섞거나 덧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자 주: 템페라는 발색 성분인 안료에 고착 성분(전색제)으로 계란 노른자를 쓴 물감. 마르는 속도가 빨라서 색을 섞어 칠할 수 없다.

11. 좋은 설계는 모방할 수 있다.

모방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일주 여행과 같다. 초보는 모르고 모방을 한다. 그 다음 그는 독창적이 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독창적인 것보다는 올바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모방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안 좋은 설계가 되는 거의 확실한 비결이다. 자기 생각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면, 아마 모방한 사람을 다시 모방하는 것일 수 있다. 라파엘(Raphael)은 19세기 중반의 취향 가운데 넓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당시 그림을 그리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모방했다.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를 고민하게 한 것은 라파엘 본인의 작품들보다는 이런 모방 풍조였다. 역자 주: '라파엘전파'는 르네상스의 화가 라파엘 이전의 화풍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19세기 중반 영국의 화가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야심 있는 사람들은 모방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취향이 성장하는 두 번째 단계는 독창성을 향한 의식적인 노력이다.

위대한 대가들은 일종의 무욕(selflessness)을 성취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오직 올바른 답을 얻고 싶은 것이며, 올바른 답의 일부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미 발견된 것이라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오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시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있다.

12. 좋은 설계는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매우 훌륭한 업적들 중 일부는 기괴한(uncanny) 속성이 있다. [http]오일러(Euler)의 공식, 브뤼겔의 [http]눈 속의 사냥꾼들, (스컹크 웍스의) [http]SR-71, [http]리스프가 그렇다. 그것들은 그냥 아름답다기보다는 이상하게 아름답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일 수도 있다. 개에게는 깡통따개가 기괴하게 보일 것이다. 역자 주: can-opener와 uncanny를 붙여 놓은 말장난. 내가 충분히 똑똑하다면 이 식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어쨌든 필연적으로 진리이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속성들은 대부분 배양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이상함을 배양하는 것이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이 나타나려고 할 때 억누르지 않는 것이다. 아인슈타인(Einstein)은 상대성을 이상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이 진리가 되게 했는데, 그 진리가 이상해 보이는 것뿐이다.

내가 공부했던 미술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개성을 개발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좋은 것들을 만들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독특한 방식으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각자 독특한 길을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켈란젤로는 미켈란젤로처럼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잘 그리려고 노력했고, 그는 미켈란젤로처럼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개성은 자신이 피할 수 없는 바로 그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함에 대해 더욱 진실이다. 거기에 지름길이란 없다. 매너리즘 미술가들(Mannerists), 낭만주의자들(Romantics), 그리고 두 세대의 미국 고등학생들이 찾아 헤맨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거기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은 선(good)을 향해 가는 것이고 그 밖의 길에서는 나오는 것이다. 역자 주: '북서항로'는 1500년대 유럽에서 신대륙을 우회해서 아시아로 가기 위해 개척하려고 했던 뱃길로서 결국은 모두 실패했다.

13. 좋은 설계는 무더기로 등장한다.

15세기 피렌체(Florence)에 살던 사람들 중에는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 기베르티(Ghiberti), 도나텔로(Donatello), 마사치오(Masaccio),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베로키오(Verrocchio), 보티첼리(Botticelli),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가 있었다. 당시 밀라노는 피렌체만큼 큰 도시였다. 15세기 밀라노의 미술가는 몇 명이나 이름을 댈 수 있겠는가? 역자 주: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 대성당(Duomo)의 [http]돔(cupola) 등을 건축했으며 투시도법을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베르티는 피렌체 세례당(Baptistry)의 (미켈란젤로가 '낙원의 문'이라고 칭송한) [http]청동 문 등을 조각했다. 도나텔로는 피렌체 바르젤로(Bargello) 미술관에 전시된 청동 [http]다윗(David)상 등을 만들었다. 마사치오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성당 벽의 [http]성삼위일체(The Holy Trinity) 등을 그렸다. 필리포 리피는 피렌체 우피치(Uffizi) 미술관에 전시된 [http]성모자(Madonna and Child) 등을 그렸다. 프라 안젤리코는 피렌체 산마르코(San Marco) 수도원의 [http]수태고지(the Annunciation) 등을 그렸다. 베로키오는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http]그리스도의 세례 등을 그렸는데 이 작품은 제자인 레오나르도와 함께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보티첼리는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http]비너스의 탄생 등을 그렸다.

15세기 피렌체에는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전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에게 어떠한 천부적인 능력이 있었다면, 밀라노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도 그 정도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밀라노의 또 다른 레오나르도는 어떻게 된 것인가?

지금 미국에는 15세기 동안 피렌체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대략 1,000배쯤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1,000명의 레오나르도와 1,000명의 미켈란젤로가 우리들 사이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DNA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매일 예술적 경이로움과 마주쳐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레오나르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 이상의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450년의 피렌체도 있어야 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관련된 문제들을 놓고 같이 작업하는 공동체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유전자는 비교적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유전자 복제 레오나르도라도 피렌체 대신 밀라노 부근에서 태어난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오늘 우리는 더 많이 돌아다닐 수 있지만, 큰일들은 여전히 불균형적으로 소수의 열 지점(hotspot)에서만 나온다. 바우하우스, 맨해튼(Manhattan) 계획, (세계 금융을 좌우하는) 뉴요커(the New Yorker), 록히드의 스컹크 웍스,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PARC, Palo Alto Research Center) 등을 보라. 역자 주: 맨해튼 계획은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든 1940년대 미국의 연구 계획으로 뉴멕시코(New Maxico) 주의 로스알라모스(Los Alamos)에 오펜하이머(Oppenheimer)를 중심으로 수천 명의 과학기술자들이 집결했다.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는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에 세워진 연구소로서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발명하는 등 정보기술의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어느 시기이든 소수의 뜨거운 주제들이 있고 거기에 대해 큰일을 해 내는 소수의 그룹이 있으며, 이 중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런 좋은 일을 해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개인이 이런 경향들을 어느 정도는 좌우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혹시 누구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밀라노의 또 다른 레오나르도는 할 수 없었다.)

14. 좋은 설계는 과감하게 도전하기도 한다.

역사의 각 시기마다 사람들은 그저 어리석을 뿐인 것들을 믿었고, 그 믿음이 너무나 강해서 다른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배척이나 심지어는 폭력도 감수해야 했다.

우리 시대에 무슨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주목할 만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한에는 그렇지 않다.

이 문제 때문에 모든 시대, 모든 분야에 어느 정도의 괴로움이 있다. 많은 르네상스 미술이 그 시대에는 발칙하게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바사리(Vasari)에 따르면, 보티첼리는 그림을 한 것을 후회하면서 포기했고, 프라 바르톨로메오(Fra Bartolommeo)와 로렌초 디 크레디(Lorenzo di Credi)는 아예 자기 작품들 일부를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많은 동시대 물리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수십 년 동안 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프랑스에서는 1950년대까지도 그랬다. 역자 주: 바사리는 1500년대 피렌체의 화가이자 건축가이면서, 당시의 위대한 예술가 30여명의 생애를 기록한 '가장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이라는 책을 펴냈다. 프라 바르톨로메오는 프렌체 팔라티나 미술관(Galleria Palatina)에 전시된 [http]그리스도와 네 사도 등을 그렸다. 로렌초 디 크레디는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http]목자들의 경배 등을 그렸다.

오늘의 실험적 실수는 내일의 새로운 이론이 된다. 위대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싶다면 관습적인 지혜와 진리가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을 못 본 채 하는 대신, 거기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 *

사실상 추한 것을 알아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들을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추하다고 생각한 것을 고침으로써 그것을 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작품은 보통 누군가 어떤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나라면 저것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다.'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지오토(Giotto)는 수 세기 동안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켜 온 공식에 따라 채색된 전통적인 비잔틴 양식의 성모(Madonna) 그림들을 보면서 그것이 생기 없고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코페르니쿠스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묵인했던 임기응변(hack)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더 좋은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자 주: 지오토는 피렌체의 르네상스 한 세기 전에 그 실마리가 되는 고딕 회화를 완성했다. 파도바(Padua)의 아레나(Arena) 성당에 전시된 [http]동방박사들의 경배 등을 그렸다.

추한 것을 묵인하지 못하는 것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칠 필요가 있는 것의 냄새를 잘 맡는 재능을 기르기 전에 그 분야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숙제부터 먼저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가면서 머리 속에서 이런 조그만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아주 임기응변이구먼! 분명히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이런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라. 그것을 배양하라. 위대한 작품으로 가는 비결은 이것이다. 매우 까다로운 취향, 그리고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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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05-03-11 11: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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